식물학의 역사와 식물학의 중요성
초기 식물학의 발달
사람들은 항상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식물을 이용해왔다. 선사시대에는 야생식물을 채집하여 먹고 약으로 사용했으며, 집을 짓는데도 사용했다. 기원전 8000년 경 서남아시아에서 식량을 얻기 위해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최초로 식물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4세기 경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세상에 알려져 있던 대부분의 식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는 그 식물들을 분류하고 명명했다. 흔히 테오프라스토스를 식물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서기 23년부터 79년까지 살았던 로마의 박물학자이자 저술가인 플리니우스는 자신이 편찬한 37권의 참고저서 <자연 연구>에 식물에 대한 많은 사실을 기록했다. 이들이 정리한 지식은 이후 1000년이 넘게 식물학의 기초가 되었다.
근대 식물학의 발달
14세기부터 약 300년에 걸쳐 일어난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근대 식물학의 발달이 시작되었다. 이 기간에 이루어진 유럽인들의 세계 탐험은 식물학과 다른 과학 분야를 상당히 자극했다. 탐험가들은 많은 새로운 식물종을 발견하여 과학자들에게 가져왔으며, 과학자들은 이를 조사하고 확인했다.
교역이 증가하면서 음식물, 섬유, 약품, 원료 등 식물에서 얻는 제품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으며, 거대한 정원을 만들어 많은 새로운 식물을 심었다. 식물의 수가 늘어나고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기존의 식물 분류 체계와 명명법은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18세기 중엽에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가 새로운 식물의 명명법을 발표했으며, 이것이 결국 표준 분류 체계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린네는 각 식물을 두 부분으로 된 ㅗ유 이름으로 부르는 이명법을 사용했고, 이것이 수정 보완되어 오늘날의 분류 체계로 발전했다.
복합현미경이 발명된 17세기에는 식물형태학이 커다락 발전을 거두었다. 이탈리아의 말피기, 영국의 로버트 훅이나 느헤미야 그루 등과 같은 과학자들은 최로로 식물의 미세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역시 17세기에 플랑드르의 의사이자 화학자인 헬몬트로부터 식물생리학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헬몬트는 식물이 어떻게 양분을 얻어 자라나는지를 밝혀냈다.
그 이후의 발달
식물생태학은 식물의 지리적 분포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발전해왔다. 독일의 박물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훔볼트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식물의 분포를 지도로 나타냈다.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의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멘델이 한 연구는 식물학과 다른 과학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멘델은 완두의 교배에 관한 실험을 통해 유전의 기본 법칙을 확립했다.
20세기에는 식물유전학과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견이 많이 이루어졌다. 한 예로 옥수수 연구를 통해 어떤 유전자들은 세포의 염색체 내에서 옮겨다닐 수 있음이 밝혀졌다. 1951년에 발표된 이 발견으로 식물과 다른 생물이 어떤 식으로 그들의 형질을 유전시키는지 잘 이햏게 되었다.
1954년에는 엽록체(엽록소가 들어있는 세포기관)가 식물세포 밖에서 광합성을 하는 실험이 성공했다. 이 실험은 당을 비롯한 그 밖의 양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장래에 식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불러일으켰다.
식물학의 중요성
식물은 생활 환경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물이 없다면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하여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질식하고 말 것이다. 식물의 생활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은 환경과 더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일정한 자연법칙은 모든 생명체에 두루 적용되므로 식물에 대해 연구할수록 모든 생물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